고려 경녕옹주의 남편인 교하 노씨 노책(盧頙)의 비
무덤은 없고 비석만 있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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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부원배. 노책의 행적은 고려사 반역 열전에 실려있다.
물론 남의 노비 빼앗기를 좋아한 노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책은 자신을 담당한 녹사 조광을에게 원한을 품고 5군의 장부에서 그의 이름을 빼기 전까지 서명을 미루는 추태를 부려 세간의 비난을 듣는다.
노책은 병사를 거느리고 직접 집에 찾아온 밀직 강중경에게 잡혀 죽었으며 그 시체는 북천동 길가에 버려진다.
그만 알아보자